1.지진
2.안개 속으로
3.보트피플
4.재회
5.이별
6.제 2 전선
제 1 화 : 지진

석진은 개성공단 출입국 사무소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DMB 안테나를 휴대폰에 꽂더니 TV 아이콘을 눌렀다. 주파수를 찾는 화면이 사라지고 익숙한 영상이 휴대폰 화면에 나타났다.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소리가 간간히 귀를 간지럽게 했지만 요란한 버스 소음에 묻혀버렸다. 석진은 다른 채널을 찾다가 뉴스가 나오는 채널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얼마 전 남북한이 휴전선에서 총격전을 치른 탓에 개성공단이 또 다시 문을 닫지 않을까 염려되었지만 이번에도 큰 문제없이 지나가는 듯 보여 한시름 놓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도사린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는지 출입국 사무소에 버스가 거의 다다를 때까지 뉴스에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는 창 밖으로 출입국 사무소가 보이는 것을 곁눈으로 확인하더니 DMB TV를 끄고 평소 습관처럼 경화와 함께 찍은 사진을 행복한 표정으로 들여다 봤다. 지난 가을에 공장 증축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다른 직원들 틈에 섞여 수줍은 표정으로 살짝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석진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나이 오십에 속마음을 숨길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게다가 상대는 북측 근로자이기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소중한 사랑이 한낱 짝사랑으로 끝날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졌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석진은 버스가 정차하는 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휴대폰을 놓칠뻔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면서 생긴 버릇인지도 모른다. 명색이 공장장이었지만 근로자 대여섯 명 당 한 명꼴로 북측 감시원이 붙어서 일하고 있는 탓에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다. 얼마 전 다른 의류업체 남측 직원이 사소한 실수로 남한으로 추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석진은 휴대폰을 안주머니에 넣더니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첫 추위가 올 거라는 예보가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는지 찬 바람이 옷 매무새 사이로 사정없이 들어왔다. 석진은 회사이름으로 지급되는 겨울외투를 일주일 정도 앞당겨 북측 근로자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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